가로...53cm
세로...32cm
지본채색
배접
여러 아라한 (나한) 들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섬세하게 묘사 했으며
필력 또한 굉장히 좋아 보입니다!
상당한 연대를 보이나 표구되지 않은 관계로 저렴하게 판매합니다!
<정의>
존경, 공양을 받을 만한 사람을 뜻하는 나한(羅漢)을 그린 불화(佛畵).
<유래 및 발달과정>
나한은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이 세상에 살면서 佛法수호의 사명을 위임받은 사람들이다. 인도에서는 불교의 삼보(三寶)신앙과 함께 나한에 대한 신앙이 성행하였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경우 선종(禪宗)의 발달과 함께 나한숭배(羅漢崇拜)가 이루어져 일찍이 반승의식(飯僧儀式), 나한재(羅漢齋) 등이 이루어졌다. 중국은 육조시대부터 그림으로 그려졌고 당대에는 현장에 의해 『법주기』가 번역됨으로써 십육나한의 신앙이 시작되었고 이름난 고승들을 모델로 하여 나한의 도상(圖像)이 형성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나한신앙이 있었고 석가모니의 십대제자를 비롯한 십육나한, 오백나한이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나한신앙의 전래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삼국유사』나 금석문(金石文)을 통해 당 말 오대 시기의 나한신앙이 신라 후기에는 전해 내려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에서는 923년 태조가 양나라에 보낸 사신 윤질(尹質)이 5백나한상을 가지고 귀국한 뒤 해주 숭산사(崇山寺)에 봉안(奉安)하고 1053년 문종이 신광사(神光寺)에서 나한재(羅漢齋)를 베푼 것을 시작으로 무려 28회의 나한재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사원마다 응진전(應眞殿)을 갖추고 16나한을 봉안하여 예배하였는데 응진전 안에는 나한상과 함께 나한도를 봉안하였다. 그림의 형식은 한 폭에 1명의 나한을 그리기도 하고 2명 또는 3-8명의 나한을 한 폭에 그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식을 보여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십육나한은 佛法을 수호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임무를 위임받은 16명의 대아라한을 말한다. 안양암의 나한상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총 6점이 전해지고 있다. 이 나한도들은 대웅전 우측 벽면에 위치한 극락왕생도 뒷면에 있던 것으로 전체적으로 채색을 가하지 않고 수묵으로만 표현한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