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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로 쓰여진 '율곡 이이'  귀한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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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로 쓰여진 '율곡 이이' 귀한 글씨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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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규격:가로*세로(cm)66.8*28.8

율곡 이이 선생의 작품입니다.
글씨체가 매우 유려하고 잘 쓴 명필입니다.

종이도 옛것 그대로의 세월감이 느껴집니다.
바로 전시하기에 무리가 없는 작품입니다.

율곡 이이(1537~1584)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석담(石潭), 우재(愚齋). 아명은 현룡(見龍), 시호는 문성(文成).

조선 중기의 여성 예술가이자 한국의 어머니상인
신사임당과 남편 이원수의 아들이다.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이론에만 몰두하지 않고
현실 개혁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한 정치가. 우리나라 오천원권 지폐의 모델이며,

신사임당이 오만원권 지폐의 모델이 되며 모자가 지폐 인물이 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본인은 평생 붕당의 대립 해소에 진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후 서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오랫동안 유학자의 면모만 부각되어 왔지만 정치가로서도 영향력이 컸다.

생전에 이이의 서얼 차별 완화 등의 개혁 정책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사후 조선에서 거론된 수많은 정책과 개혁론은 이이의 사상과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천재 중 하나로 책을 읽을 때 무려 10줄을 1번에 읽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뭐가 대단한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이 시대 책들은 일부 서적을 제외하면 전부 한자로 적혀 있던 시절이다.

이 시절에는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조선 선비라도 1번에 1줄 읽는 것도 어려워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사실 이이가 조선의 대표적인 천재로 인정받는 이유에는 이이의 학습 능력이 빼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겨우 23세에 정립해 일관되게 유지했던 이기일원론으로 유학을 완전히 바꿔놨던 이이의 뛰어난 사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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