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FRIDAY | Biggest Deals of the Year🔥
$3,242.78$3,413.45
5% Off10% Off Shipping
도산 안창호, 애기애타 유묵 작품
a month ago
Benefit
Free Order Consolidation10% Off International Shipping
100% Safe Buying Guarantee
Category
Rare/Collectibles작품규격 : 50.5*20(cm)
안창호 선생님의 수결과 인장이 있는 작품입니다.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대변하는 말인 '애기애타'가 쓰여져 있습니다.
애기애타(愛己愛他)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
즉, 자기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나아가 나라를 사랑하고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도산 선생은 항상 작은것, 나부터 실천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두인과 인장 수결이 명확이 찍혀 있습니다.
고급 액자로 되어 있어 보관 전시도 용이한 작품입니다.
안창호(1878.11.9 ~ 1938.3.10)
호는 도산(島山)으로 평안남도 강서(江西)에서 출생했다. 한학을 배우다가 서당 선배로부터 신식학문에 눈을 뜨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중 청일전쟁(淸日戰爭)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1895년 상경, 구세학당(救世學堂)에 들어가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1897년 독립협회(獨立協會)에 가입하고 평양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쾌재정(快哉亭)에서 개최하여 약관의 몸으로 많은 청중에게 감동을 안겨준 연설을 하였다. 훗날 종교가이며 교육자로서 민족의 지도자가 된 이승훈(李昇薰)은 이 연설에 감명을 받고 독립운동의 의지를 굳혔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1899년 고향 강서에 한국 최초로 남녀공학의 점진학교(漸進學校)를 세우는 한편 황무지 개척사업을 벌였고, 앞으로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문을 더욱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고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노동을 하면서 초등과정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 교포들의 권익보호와 생활향상을 위해 한인공동협회(韓人共同協會, 공립협회)를 만들어 《공립신보(共立新報)》를 발간하였다. 이무렵 자신의 호를 도산(島山)이라 지었다.
그 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06년 귀국, 1907년 이갑(李甲)·양기탁(梁起鐸)·신채호(申采浩)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를 조직,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新報)》를 기관지로 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구에 태극서관(太極書館)을 세워 출판사업을 벌이고 평양에 도자기회사를 설립하여 민족산업육성에 힘쓰는 한편 평양에 대성학교(大成學校)를 설립하고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를 조직하여 민족의 지도자 양성에 힘쓰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에는 신민회 간부들과 함께 개성헌병대에서 3개월간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는데 이는 1909년에 있었던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암살사건에 관련되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그 후 시베리아를 거쳐 1911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105인 사건’으로 신민회·청년학우회가 해체되자 1913년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하여 내무총장·국무총리대리·노동총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신문(獨立新聞)》을 창간하였다. 1921년 임시정부가 내부분열을 일으키자 이를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1923년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가 흥사단 조직을 강화하였다.
1926년 다시 상하이로 가서 흩어진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해 진력하였으며 독립운동기지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상촌(理想村) 건설에 뜻을 두고 이를 추진하였으나 일제가 중국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실패하고, 1932년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虹口公園] 폭탄사건(훙커우공원의거)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2년 6개월을 복역한 뒤 가출옥하여 휴양 중 동우회(同友會)사건으로 재투옥되고, 1938년 3월 10일 병으로 보석되어 휴양 중 사망하였다.
안창호 선생님의 수결과 인장이 있는 작품입니다.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대변하는 말인 '애기애타'가 쓰여져 있습니다.
애기애타(愛己愛他)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
즉, 자기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나아가 나라를 사랑하고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도산 선생은 항상 작은것, 나부터 실천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두인과 인장 수결이 명확이 찍혀 있습니다.
고급 액자로 되어 있어 보관 전시도 용이한 작품입니다.
안창호(1878.11.9 ~ 1938.3.10)
호는 도산(島山)으로 평안남도 강서(江西)에서 출생했다. 한학을 배우다가 서당 선배로부터 신식학문에 눈을 뜨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중 청일전쟁(淸日戰爭)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1895년 상경, 구세학당(救世學堂)에 들어가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1897년 독립협회(獨立協會)에 가입하고 평양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쾌재정(快哉亭)에서 개최하여 약관의 몸으로 많은 청중에게 감동을 안겨준 연설을 하였다. 훗날 종교가이며 교육자로서 민족의 지도자가 된 이승훈(李昇薰)은 이 연설에 감명을 받고 독립운동의 의지를 굳혔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1899년 고향 강서에 한국 최초로 남녀공학의 점진학교(漸進學校)를 세우는 한편 황무지 개척사업을 벌였고, 앞으로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문을 더욱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고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노동을 하면서 초등과정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 교포들의 권익보호와 생활향상을 위해 한인공동협회(韓人共同協會, 공립협회)를 만들어 《공립신보(共立新報)》를 발간하였다. 이무렵 자신의 호를 도산(島山)이라 지었다.
그 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06년 귀국, 1907년 이갑(李甲)·양기탁(梁起鐸)·신채호(申采浩)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를 조직,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新報)》를 기관지로 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구에 태극서관(太極書館)을 세워 출판사업을 벌이고 평양에 도자기회사를 설립하여 민족산업육성에 힘쓰는 한편 평양에 대성학교(大成學校)를 설립하고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를 조직하여 민족의 지도자 양성에 힘쓰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에는 신민회 간부들과 함께 개성헌병대에서 3개월간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는데 이는 1909년에 있었던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암살사건에 관련되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그 후 시베리아를 거쳐 1911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105인 사건’으로 신민회·청년학우회가 해체되자 1913년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하여 내무총장·국무총리대리·노동총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신문(獨立新聞)》을 창간하였다. 1921년 임시정부가 내부분열을 일으키자 이를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1923년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가 흥사단 조직을 강화하였다.
1926년 다시 상하이로 가서 흩어진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해 진력하였으며 독립운동기지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상촌(理想村) 건설에 뜻을 두고 이를 추진하였으나 일제가 중국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실패하고, 1932년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虹口公園] 폭탄사건(훙커우공원의거)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2년 6개월을 복역한 뒤 가출옥하여 휴양 중 동우회(同友會)사건으로 재투옥되고, 1938년 3월 10일 병으로 보석되어 휴양 중 사망하였다.
Curated for Your Taste
More
봉순이네명품고미술
4.7
Follower 100
Therepresents a professional seller.
Products in this store 133
More
✈️ 10% Off Shipping!
Please note
Bungaejangter Inc. will not be held responsible for any liabilities arising in connection with any transactions between buyers and sellers on this application or website.
Ⓒ 2011-2023. Bungaejangter Inc. all rights reserved.
Korean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