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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봉 허소/진품/10폭/서예/글씨/전서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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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Piece효봉 허소
진품
귀한 10폭 서예 글씨
크기 31*106.5
약력
허소(許炤,1882∼1942)
효봉 허소의 본관은 양천이며 자는 남규, 또 다른 호로 담수(더벅머리 노인)라는 자호를 즐겨 사용하였다.
증광진사를 지낸 근(瑾)의 증손으로 1882년(고종 19) 10월 17일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작천 마을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한문수학 및 서예 재능이 탁월하여 신동으로 알려짐
성장하면서 경사에 밝고 시, 서 화에 심취해 여러 차례 선전에 입선함으로서 화단에 필명을 날렸다.
그의 글씨는 조족(새의 발자국)과 같은 기이한 체로서 전서 중 백수복(百壽福, 수와 복자를 백가지 다른 형태로 쓴 글씨)을 잘 썼다.
특히 예서와 전서에 능했으며 특히 그의 전서(全書)는 당대 최고의 명필로 꼽았으며 그의 명성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백수복(白壽福)과 산수(山水) 및 묵서(墨書)를 헌증하였다고 한다.
당대의 명필가이자 이조판서를 지낸 석촌 운용구도 효봉의 글씨를 두고 "압록강 동쪽에서는 가히 겨룰 사람이 없겠다"며 효봉의 글씨를 찬탄했다고 한다.
그와 교류했던 인사로는 서울의 고하 송진우, 가인 김병로, 인촌 김성수 등이 있었고 향리에서는 회봉 안규용, 설주 송운회, 문강 기근섭, 미호 정운영, 월담 김재석 등이 있었다.
평생 한거하면서 가야금과 글씨를 즐기던 허소 선생은 타계하기 전까지 지필묵을 놓지 않고 ‘나는 멀었다’ 하시며 겸손함을 잊지 않았다고 하며
1942년 2월 29일 61세로 삶을 마감하였다.
※※다른곳에서 볼수없는 귀한그림입니다.
작품성좋으며 사진을 참고해주세요.
※반품불가
(작품만 보관중)
진품
귀한 10폭 서예 글씨
크기 31*106.5
약력
허소(許炤,1882∼1942)
효봉 허소의 본관은 양천이며 자는 남규, 또 다른 호로 담수(더벅머리 노인)라는 자호를 즐겨 사용하였다.
증광진사를 지낸 근(瑾)의 증손으로 1882년(고종 19) 10월 17일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작천 마을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한문수학 및 서예 재능이 탁월하여 신동으로 알려짐
성장하면서 경사에 밝고 시, 서 화에 심취해 여러 차례 선전에 입선함으로서 화단에 필명을 날렸다.
그의 글씨는 조족(새의 발자국)과 같은 기이한 체로서 전서 중 백수복(百壽福, 수와 복자를 백가지 다른 형태로 쓴 글씨)을 잘 썼다.
특히 예서와 전서에 능했으며 특히 그의 전서(全書)는 당대 최고의 명필로 꼽았으며 그의 명성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백수복(白壽福)과 산수(山水) 및 묵서(墨書)를 헌증하였다고 한다.
당대의 명필가이자 이조판서를 지낸 석촌 운용구도 효봉의 글씨를 두고 "압록강 동쪽에서는 가히 겨룰 사람이 없겠다"며 효봉의 글씨를 찬탄했다고 한다.
그와 교류했던 인사로는 서울의 고하 송진우, 가인 김병로, 인촌 김성수 등이 있었고 향리에서는 회봉 안규용, 설주 송운회, 문강 기근섭, 미호 정운영, 월담 김재석 등이 있었다.
평생 한거하면서 가야금과 글씨를 즐기던 허소 선생은 타계하기 전까지 지필묵을 놓지 않고 ‘나는 멀었다’ 하시며 겸손함을 잊지 않았다고 하며
1942년 2월 29일 61세로 삶을 마감하였다.
※※다른곳에서 볼수없는 귀한그림입니다.
작품성좋으며 사진을 참고해주세요.
※반품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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