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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추상화가 '주경'님의 풍경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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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re/Collectibles작품규격 : 가로23.5*세로33(cm)
한국의 서양화가로 일찍이 추상화에 눈 떴으며,
오르피즘 경향의 음악적 율동이 구성주의적 방식으로,
결합된 추상작품을 제작한 주경님의 수결이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캔버스에 유채로 그려진 작품입니다.
푸른바탕에 높은 나무를 그려넣고 줄기를 강조하였습니다.
낮은 채도로 채색되어 차분하며 깊이감이 있습니다.
작품의 하단에 영문의 싸인과 한자의 수결, 년도가 쓰여있습니다.
오랜 세월로 물감의 갈라짐이 있습니다.
사진으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작품 수집하시는 기회 갖으시길 바랍니다.
주경(1905-1979)
본명은 재경(載慶). 호는 태소(泰素). 서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고희동(高羲東)과 이종우(李鍾禹)에게 데생 및 유화기법을 지도받았다. 1928년 일본에 건너가 14년간 머물며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와 데이코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를 졸업하였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이전부터 간행되던 미술잡지 등을 통하여 파리 중심의 새로운 서양미술 조류를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집안의 큰 재난을 보고 절망한 심정을 표현한 1923년작 「파란」은 한국 서양화사에서 최초의 추상화로 간주되는 작품이다. 주경은 미래파적인 경향을 보이는 「파란」과 앵포르멜의 전조로 일컬어지는 「생존」(1930) 등을 통해 순수 추상화를 시도함으로써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주경은 당시 국내의 서양화가들이나 일본의 데이코쿠미술학교와 도쿄미술학교 출신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대개의 작품은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적인 작품경향을 띠었다. 일본 유학시절에도 오랜 기간 데생을 연구하였고 2년간 조각수업을 받기도 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에는 회화와 조각을 함께 출품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19세기말 20세기 초의 다양한 서구미술사조를 실험하고 모색하였다.
일본 유학시절인 1932년 ‘동경 조선미술학우회’를 창립한 뒤 1934년까지 회장을 역임했고 1935년에는 재동경유학생의 모임인 ‘백우회’를 조직하였다. 귀국 후에는 대구에 정착하여 대구 계성학교 미술교사(1942), 대구 미국문화원 원장(1950), 한국미술협회 경상북도지부장(1962∼1971) 등을 역임하면서 미술행정가이자 미술교육가로서 활약하였다. 특히 대구에 정착하여 대구 지역의 서양화단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74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로 추대되어 1978년까지 사실적인 자연풍경과 꽃 등의 정물화를 해마다 출품하며, 만년의 창작열정을 쏟았다. 대표작으로 「파란」(1924), 「생존」(1930), 「붉은색 배경의 나부(裸婦)」(1940) 등이 있다.
한국의 서양화가로 일찍이 추상화에 눈 떴으며,
오르피즘 경향의 음악적 율동이 구성주의적 방식으로,
결합된 추상작품을 제작한 주경님의 수결이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캔버스에 유채로 그려진 작품입니다.
푸른바탕에 높은 나무를 그려넣고 줄기를 강조하였습니다.
낮은 채도로 채색되어 차분하며 깊이감이 있습니다.
작품의 하단에 영문의 싸인과 한자의 수결, 년도가 쓰여있습니다.
오랜 세월로 물감의 갈라짐이 있습니다.
사진으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작품 수집하시는 기회 갖으시길 바랍니다.
주경(1905-1979)
본명은 재경(載慶). 호는 태소(泰素). 서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고희동(高羲東)과 이종우(李鍾禹)에게 데생 및 유화기법을 지도받았다. 1928년 일본에 건너가 14년간 머물며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와 데이코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를 졸업하였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이전부터 간행되던 미술잡지 등을 통하여 파리 중심의 새로운 서양미술 조류를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집안의 큰 재난을 보고 절망한 심정을 표현한 1923년작 「파란」은 한국 서양화사에서 최초의 추상화로 간주되는 작품이다. 주경은 미래파적인 경향을 보이는 「파란」과 앵포르멜의 전조로 일컬어지는 「생존」(1930) 등을 통해 순수 추상화를 시도함으로써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주경은 당시 국내의 서양화가들이나 일본의 데이코쿠미술학교와 도쿄미술학교 출신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대개의 작품은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적인 작품경향을 띠었다. 일본 유학시절에도 오랜 기간 데생을 연구하였고 2년간 조각수업을 받기도 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에는 회화와 조각을 함께 출품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19세기말 20세기 초의 다양한 서구미술사조를 실험하고 모색하였다.
일본 유학시절인 1932년 ‘동경 조선미술학우회’를 창립한 뒤 1934년까지 회장을 역임했고 1935년에는 재동경유학생의 모임인 ‘백우회’를 조직하였다. 귀국 후에는 대구에 정착하여 대구 계성학교 미술교사(1942), 대구 미국문화원 원장(1950), 한국미술협회 경상북도지부장(1962∼1971) 등을 역임하면서 미술행정가이자 미술교육가로서 활약하였다. 특히 대구에 정착하여 대구 지역의 서양화단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74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로 추대되어 1978년까지 사실적인 자연풍경과 꽃 등의 정물화를 해마다 출품하며, 만년의 창작열정을 쏟았다. 대표작으로 「파란」(1924), 「생존」(1930), 「붉은색 배경의 나부(裸婦)」(1940) 등이 있다.
봉순이네명품고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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