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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 이재완 선생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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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 이재완 선생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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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que
석호 이재완 선생 간찰

대한제국기 종정원경, 궁내부대신, 승녕부총관 등을 역임한 관료. 종친 · 친일반민족행위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칠(舜七), 호는 석호(石湖)이다. 남연군의 차남이자 흥선대원군의 중형(仲兄)인 흥완군 이정응(李晸應)의 아들로 입양되었다. 자작 이재곤의 친형이다. 『조선귀족약력』에서 그를 ‘이태왕 전하의 종형(從兄)’에 해당한다고 하여 고종황제의 사촌형이라고 표기하였지만, 1855년생인 그는 1852년생인 고종에 비해 3년 연하이기 때문에 종형이 아니라 종제(從弟)가 맞다.
1855년 12월 5일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다. 1875년 4월 별시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그해 6월 승정원 가주서가 되었고, 1876년 4월 예문관 검열을 거쳐 1877년 8월 동부승지에 이르렀다. 1880년 2월 이조 참판, 5월 홍문관 부제학, 1881년 8월 도승지에 임명되었다. 1884년 10월 갑신정변 때에는 개화당(開化黨) 내각의 병조 판서가 되었지만, 개화당 정권 붕괴 직후인 10월 20일 예조 판서에 임명되었다. 1885년 4월 형조 판서, 5월 사헌부 대사헌이 되었다. 1886년 1월부터 홍문관 제학, 한성부 판윤, 형조 판서, 이조 판서, 예조 판서,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거쳐 1894년 6월 의정부 좌참찬에 임명되었다.
일제 강점 이후 일본 정부로부터 한일합병에 관한 공로를 인정받아 발표된 후작 작위 수여 대상자에 포함되었음을 통보받고 1910년 10월 7일 총독부에 출석하였으며, 12월 28일 일본 정부로부터 일본 육군 중장의 예우와 함께 부속 무관을 배정받았다. 1911년 1월 13일 총독부 정무총감실에 출석하여 33만 6천원의 은사공채권을 받았고, 같은 해 2월 22일 총독관저에서 열린 작기 본서 봉수식(爵記本書奉授式)에 참석하였다. 또 일본 정부로부터 ‘귀족의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자로서 한일관계에 특히 공적이 현저한 자’로 인정되어 1913년 5월 6일 용산 일본군사령부에서 열린 한국병합기념장 수여식에 참석하여 기념장을 수령하였다. 1912년 12월 정4위에 서위(敍位)되었고, 1918년 12월 20일 종3위에 승서(陞敍)되었다. 1915년 9월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의 경성협찬회에 특별유공회원으로서 금전을 기부하였고, 1915년 11월 다이쇼[大正]천황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19년 1월 고종의 장의(葬儀) 고문으로 행장 제술원(行狀製述員)에 임명되었다. 1922년 8월 11일 사망하였고, 10월 20일 아들 이달용(李達鎔)이 후작의 작위를 세습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이즈 : 26.8 * 24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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