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12
Jo Seon-mal, precious calligraphy by Seokwoon Kwon Dong-soo
조선말, 석운 권동수님의 귀한 글씨
4 hours ago
Category
Rare/CollectiblesTranslate to English
작품규격 : 29.8*116.8(cm)
조선말기 서예가이시자 애국지사이셨던 석운 권동수님의 호와 인장이 있는 행서 입니다.
명필의 글씩 쓰여있습니다.
두인과 인장이 매우 좋으며 '석운도인' 의 호가 쓰여져 있습니다.
영인본이나 복사본이 아닌 직접 쓰여진 작품입니다.
오랜 세월로 찢긴곳이 있으나 감상하시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귀한 작품 소장하시는 기회 갖으시길 바랍니다.
권동수, 출생~사망 : 1842 ~ ?
조선 말기의 문신, 서예가. 자는 치영(致永). 호는 석운(石雲). 갑신정변 이후 김용원(金鏞元) 등 네명과 함께 러시아 황제에게 협조요청을 목적으로, 고종의 친서를 가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밀파되었다. 러시아 관원과의 접촉을 위하여 전영령관(前營領官)의 신분을 이용, 총포구입차 러시아에 가는 길이라 하며 경흥(慶興) 관문을 통과, 러시아와 비밀접촉을 가졌다 한다. 1892년에는 갑신정변 이후 일본에 망명중인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등을 암살할 목적으로, 이일직(李逸稙)과 아우 재수(在壽) 등과 함께 일본에 밀파되었다. 그는 친군장위영령관(親軍將衛營領官) 으로, 이일직은 미곡무역상인으로 가장하고, 권재수는 통역관 자격으로 일본에 갔다. 이들은 1893년 가을에 프랑스에서 귀국길에 동경에 도착한 홍종우(洪鍾宇)를 포섭하여 김옥균 암살계획을 구체화하였다. 1894년 3월 김옥균, 홍종우가 상해로 떠나자, 이일직이 세운 계획에 따라 박영효 암살을 기도하였다. 즉, 서예에 능한 이점을 이용하여 박영효의 별실에서 휘호를 쓴 뒤 박영효가 품평을 하는 사이에 저격할 계획을 세웠다. 박영효가 투숙하고 있는 친린의숙(親隣義塾)에 김태원(金泰元)을 보내어 박영효를 유인하게 하였는데, 그가 도착하자 바로 그 계획이 누설되어 계획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권동수 형제는 권총과 일본도를 휴대하고 운래관(雲來館)에 대기하고, 이일직이 직접 박영효를 방문, 암살하려 하였다. 이일직은 박영효의 친구인 이규완(李奎完), 정난교(鄭蘭敎) 등에 의해 붙들려, 친린의숙에 감금되고 말았다. 이에 박영효 암살에 실패하고 일본주재 조선공사관에 피신, 보호를 받았다. 귀국 후 1898년 12월 보부상을 동원하여 만민공동회를 탄압할 때 뒤에서 조정하였고, 1900년에 블라디보스토크 통상사무관으로 임명되었다. 서예에 매우 능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행서와 전서에 뛰어났다.
조선말기 서예가이시자 애국지사이셨던 석운 권동수님의 호와 인장이 있는 행서 입니다.
명필의 글씩 쓰여있습니다.
두인과 인장이 매우 좋으며 '석운도인' 의 호가 쓰여져 있습니다.
영인본이나 복사본이 아닌 직접 쓰여진 작품입니다.
오랜 세월로 찢긴곳이 있으나 감상하시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귀한 작품 소장하시는 기회 갖으시길 바랍니다.
권동수, 출생~사망 : 1842 ~ ?
조선 말기의 문신, 서예가. 자는 치영(致永). 호는 석운(石雲). 갑신정변 이후 김용원(金鏞元) 등 네명과 함께 러시아 황제에게 협조요청을 목적으로, 고종의 친서를 가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밀파되었다. 러시아 관원과의 접촉을 위하여 전영령관(前營領官)의 신분을 이용, 총포구입차 러시아에 가는 길이라 하며 경흥(慶興) 관문을 통과, 러시아와 비밀접촉을 가졌다 한다. 1892년에는 갑신정변 이후 일본에 망명중인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등을 암살할 목적으로, 이일직(李逸稙)과 아우 재수(在壽) 등과 함께 일본에 밀파되었다. 그는 친군장위영령관(親軍將衛營領官) 으로, 이일직은 미곡무역상인으로 가장하고, 권재수는 통역관 자격으로 일본에 갔다. 이들은 1893년 가을에 프랑스에서 귀국길에 동경에 도착한 홍종우(洪鍾宇)를 포섭하여 김옥균 암살계획을 구체화하였다. 1894년 3월 김옥균, 홍종우가 상해로 떠나자, 이일직이 세운 계획에 따라 박영효 암살을 기도하였다. 즉, 서예에 능한 이점을 이용하여 박영효의 별실에서 휘호를 쓴 뒤 박영효가 품평을 하는 사이에 저격할 계획을 세웠다. 박영효가 투숙하고 있는 친린의숙(親隣義塾)에 김태원(金泰元)을 보내어 박영효를 유인하게 하였는데, 그가 도착하자 바로 그 계획이 누설되어 계획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권동수 형제는 권총과 일본도를 휴대하고 운래관(雲來館)에 대기하고, 이일직이 직접 박영효를 방문, 암살하려 하였다. 이일직은 박영효의 친구인 이규완(李奎完), 정난교(鄭蘭敎) 등에 의해 붙들려, 친린의숙에 감금되고 말았다. 이에 박영효 암살에 실패하고 일본주재 조선공사관에 피신, 보호를 받았다. 귀국 후 1898년 12월 보부상을 동원하여 만민공동회를 탄압할 때 뒤에서 조정하였고, 1900년에 블라디보스토크 통상사무관으로 임명되었다. 서예에 매우 능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행서와 전서에 뛰어났다.
Packaging
Premium packaging service
Learn MoreDelivery
Expected to arrive 7-14 days after ordered
Worldwide Shipping is available
Reliable delivery service with package tracking
Payments
Please note
Bungaejangter Inc. will not be held responsible for any liabilities arising in connection with any transactions between buyers and sellers on this application or website.
Ⓒ 2011-2023. Bungaejangter Inc. all rights reserved.
Korean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