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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je Kim Deok-shin Sansu Nokgakdo
긍제 김득신 산수누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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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규격 : 42*105.5(cm)
아주아주 귀한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작품입니다.
김득신은 흔히 김홍도와 신윤복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불리우며
44년 이상을 국가의 중요한 화업을 담당한 도화서 화원의로,
풍속 외에도 인물, 산수, 영모, 화조 등 거의 모든 화목에서 특출난 실력을 뽐내던 당대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입니다.
이 작품은 천위에 수묵담채로 그려져 있습니다.
가장특기할 점은 화제글씨가 7언절귀 자작시라는 것입니다
보통 당시 또는 송나라 시를 기재하는데
이 화제는 미공개된 긍제 김득신의 자작글씨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끝없이 편쳐지는 대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이상적인 풍경의 산수화입니다.
그림의 구성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경에는 단단한 뿌리를 가진 소나무와 작은 바위들, 누각과 그안에 앉아 있는 사람을 형성하고
원경에는 멀고 높은 산새들을 배치하고,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이어 내려오는 중심에
바위와 집들을 형성하였습니다.
작품의 상단에 명필의 글씨와 함께, 두인 수결 인장이 뚜렷하게 찍혀져 있습니다.
빼어난 구도감각과 옅은 채색감으로 서정적이며 고즈넉한 느낌을 줍니다.
액자로 만들어 전시하시면 어느 공간이든 향토적인 편안함과 고풍스러움을 느낄수 있을것입니다.
밝은 안목으로 수집하시어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김득신1754(영조 30)∼1822(순조 22).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개성. 자는 현보(賢輔), 호는 긍재(兢齋), 초호는 홍월헌(弘月軒).화원이었던 응리(應履)의 아들이며, 응환(應煥)의 조카이다.
화원으로 첨중(僉中)을 지낸 한중흥(韓重興)의 외손자이다. 동생인 석신(碩臣)·양신(良臣), 그리고 아들인 건종(建鍾)·수종(秀鍾)·하종(夏鍾)이 모두 화원이었다. 그 또한 화원으로 초도첨사(椒島僉使)를 지냈다.
1791년 정조어진(正祖御眞)의 원유관본(遠遊冠本)을 그리는 데에 이명기(李命基)·김홍도(金弘道)·신한평(申漢坪)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풍속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밖에 도석인물(道釋人物) 및 산수·영모(翎毛)도 잘 그렸다.
각 분야에 걸쳐 김홍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풍속화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특히, 김홍도의 후기 화풍을 계승하면서 산수를 배경으로 더 삽입시켰고, 또 해학적 분위기와 정서를 좀더 가미하여 그에 못지않은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는 풍속화에서 김홍도의 전통을 이은 대표적 화가로 손꼽히고 있을 뿐 아니라, 〈곽분양행락도 郭汾陽行樂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같은 공필(工筆)의 고사도(故事圖)를 남기고 있어 보다 다양한 일면을 보이고 있다.산수와 영모에서도 서정성 높은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파적도 破寂圖〉(간송미술관 소장)·〈풍속화첩〉(간송미술관 소장)·〈귀시도 歸市圖〉(개인 소장)·〈풍속팔곡병 風俗八曲屛〉·〈오동폐월도 梧桐吠月圖〉(개인 소장)·〈신선도〉(호암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
아주아주 귀한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작품입니다.
김득신은 흔히 김홍도와 신윤복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불리우며
44년 이상을 국가의 중요한 화업을 담당한 도화서 화원의로,
풍속 외에도 인물, 산수, 영모, 화조 등 거의 모든 화목에서 특출난 실력을 뽐내던 당대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입니다.
이 작품은 천위에 수묵담채로 그려져 있습니다.
가장특기할 점은 화제글씨가 7언절귀 자작시라는 것입니다
보통 당시 또는 송나라 시를 기재하는데
이 화제는 미공개된 긍제 김득신의 자작글씨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끝없이 편쳐지는 대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이상적인 풍경의 산수화입니다.
그림의 구성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경에는 단단한 뿌리를 가진 소나무와 작은 바위들, 누각과 그안에 앉아 있는 사람을 형성하고
원경에는 멀고 높은 산새들을 배치하고,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이어 내려오는 중심에
바위와 집들을 형성하였습니다.
작품의 상단에 명필의 글씨와 함께, 두인 수결 인장이 뚜렷하게 찍혀져 있습니다.
빼어난 구도감각과 옅은 채색감으로 서정적이며 고즈넉한 느낌을 줍니다.
액자로 만들어 전시하시면 어느 공간이든 향토적인 편안함과 고풍스러움을 느낄수 있을것입니다.
밝은 안목으로 수집하시어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김득신1754(영조 30)∼1822(순조 22).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개성. 자는 현보(賢輔), 호는 긍재(兢齋), 초호는 홍월헌(弘月軒).화원이었던 응리(應履)의 아들이며, 응환(應煥)의 조카이다.
화원으로 첨중(僉中)을 지낸 한중흥(韓重興)의 외손자이다. 동생인 석신(碩臣)·양신(良臣), 그리고 아들인 건종(建鍾)·수종(秀鍾)·하종(夏鍾)이 모두 화원이었다. 그 또한 화원으로 초도첨사(椒島僉使)를 지냈다.
1791년 정조어진(正祖御眞)의 원유관본(遠遊冠本)을 그리는 데에 이명기(李命基)·김홍도(金弘道)·신한평(申漢坪)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풍속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밖에 도석인물(道釋人物) 및 산수·영모(翎毛)도 잘 그렸다.
각 분야에 걸쳐 김홍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풍속화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특히, 김홍도의 후기 화풍을 계승하면서 산수를 배경으로 더 삽입시켰고, 또 해학적 분위기와 정서를 좀더 가미하여 그에 못지않은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는 풍속화에서 김홍도의 전통을 이은 대표적 화가로 손꼽히고 있을 뿐 아니라, 〈곽분양행락도 郭汾陽行樂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같은 공필(工筆)의 고사도(故事圖)를 남기고 있어 보다 다양한 일면을 보이고 있다.산수와 영모에서도 서정성 높은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파적도 破寂圖〉(간송미술관 소장)·〈풍속화첩〉(간송미술관 소장)·〈귀시도 歸市圖〉(개인 소장)·〈풍속팔곡병 風俗八曲屛〉·〈오동폐월도 梧桐吠月圖〉(개인 소장)·〈신선도〉(호암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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